세 가지 고민 2
데이비드 보쉬의 '변화하고 있는 선교' 책의 12장 '부상하는 에큐메니칼 선교 패러다임의 요소들'에 대한 발제를 듣고 토론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고민들과 연결하여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 본다.
==>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주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현재 우리 한인 목회자들이 사역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선교적 교회'가 그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간에 그 개념에 대한 정립이 미비한 상태이지만,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의 선교'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늘어가는 이 시대의 교회 상황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형식적인 '선교'를 하는 것으로 안주하지 않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하나님의 선교'라는 측면에서 다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DNA'가 '선교적'이라는 것이 이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확인되고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현재의 교회 조직으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짧은 사역 기간이지만 사역을 하면 할수록, 나는 현재의 교회 조직이 잘 짜여진 튼튼한 기계적인 구조물과 같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은 특별히 구조 변경을 하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 없이 계속 돌아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녹슬고 마모현상이 일어나 그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기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구조물에 결함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결함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구조물을 분해하여 일일히 모든 부품들을 점검해 보아야 하고, 문제가 있는 부품을 찾아서 새 부품으로 교체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결함이 있는 부품을 교체하더라도, 우리는 그 구조물이 이전과 같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더 개선된 구조를 가진 구조물을 다시 새롭게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의 교회 내에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면, 현재의 교회 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보다, 개선된 형태의 새로운 교회의 조직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척박한 복음의 불모지인 선교지에 이러한 새로운 조직의 교회를 세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우리는 개척자의 정신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교회의 상황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처럼, 목회자의 상황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전에는 목회자에 대한 비난이 주로 세상에서 쏟아져 나왔다면, 현대의 세계는 세상이나 교회 안이나 구분할 것 없이 목회자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목회자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 사람들과 접하다 보면, 우리는 그 비난 또는 더 나아가서는 비아냥의 소리들이 그들의 대화 가운데서 자주 나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오히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비난과 비아냥의 소리들을 더 쉽게 들을 수 있다. 목회자가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메세지를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회 밖에서는 오히려 세상이 목회자에 대하여 비난의 메세지를 전하며 목회자들의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는 교인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목회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높아져 가고 있으며, 목회자의 권위를 세워주려고 하는 분위기를 찾아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 동안 신비스러운 베일에 쌓여 있던 목회자의 거룩한 영역은 이제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일부 스타 목회자들과 대형 교회의 비도덕적인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이제는 목회자의 지명도나 사역의 규모에 상관 없이 전반적인 사회 현상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가운데서 우리 목회자들은 분명히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의 사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지만, 목회자들의 삶의 형태는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목회자가 세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교회 안에서만 성을 쌓고 앉아 있는 목회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목회자 자신들의 삶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삶을 사람들이 그대로 들여다 보고, 목회자의 삶이 바로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사도 바울과 같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한 예를 든다면,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는 일터로 뛰어 들어 그들과 함께 삶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베일에 쌓여져 있는 신비스러운 목회자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세상에서 몸부리치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목회자의 삶을 통하여, 분명히 세상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들 자신도 세상 사람들의 삶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지 더욱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회 개혁과 선교적 교회는 목회자들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계속>